[릭벨] Guilty pleasure

빌닻 2016. 10. 14. 19:52

Guilty pleasure



노트북을 무릎 위에 얹고 두드리던 릭은 방으로 들어오는 벨져를 보았다. 왔소? 노크도 없이 문을 열어젖힌 벨져에 인사도 데면데면 흘린 채 다시 노트북에 시선을 고정했다. 벨져는 릭의 반응에 딱히 신경 쓰지 않는 눈치였다. 화면에 혼을 빼놓고 있는 릭을 보던 벨져가 등 뒤로 쥐고 있던 것을 침대에 던졌다. 오다가 재미있는 걸 하나 주웠는데. 제 다리 가까이에 퍼지는 파동에 릭이 그제야 매여 있던 시선을 풀었다. 침대 근처에 서서 팔짱을 끼고 있는 벨져를 흘긋 보고 그의 차림새를 확인했다. 아직 채 마르지 않은 은색 머리카락 끝에서 작은 물방울이 떨어지고 품보다 훨씬 큰 셔츠가 벨져의 아래를 간신히 가리고 있었다. 벨져, 그 옷차림은? 처음 보는 행색에 당황하기보단 흥미롭다는 기색을 한 릭에 벨져는 가볍게 턱짓했다. 제가 준 것부터 보라는 의미였다. 릭은 가볍게 웃고 침대로 던져진 물건으로 눈을 옮겼다.

 

비스듬히 내팽개쳐진 십자가였다. 릭은 짙은 갈색으로 덮여진 나무 십자가를 집어 들어 이리저리 살펴보았다. 인간들은 뱀파이어가 십자가를 무서워할 것이라 생각하지만, 글쎄. 그것은 예수쟁이들이 만들어낸 허상이었고 뱀파이어를 어떻게든 막고 싶었던 발악에 가까웠다.

 

릭은 십자가를 쥔 손으로 벨져를 쳐다보았다. 릭의 시선에 벨져는 입을 열었다. 집으로 오는 길에 어떤 아이가 쥐고 있었던 거야. 죽였소? 아니, 받았지. 릭은 고개를 끄덕거렸다.

 

십자가를 몇 개 쥐고 다니기에 무엇이냐고 물으니 이 주변에 뱀파이어가 나온다고 부모님께 받았다더군.”

 

얘기를 이어가던 벨져가 뱀파이어를 말하는 부분에서 가볍게 웃음을 터트리고 마저 말을 이었다. 릭이 알겠다는 소리를 길게 빼었다. 며칠 전, 사냥을 한 것 때문에 사람들이 겁을 먹고 있는 모양이었다. 목에 남은 두 개의 잇자국과 온몸의 피가 빠진 채로 발견된 시체는 그들의 두려움을 사기에 충분했다. 생각보다 시끄러운 요즘에 제대로 뒤처리하지 않은 것을 후회했지만 소란스러운 것도 그 나름의 재미가 있었다. 몇 백 년이 지나도 그 루머는 사그라들 줄을 모르는군. 그래서? 뒤에 이야기가 더 있음을 눈치 챈 릭이 노트북을 닫아 저 멀리 두고 흥미로운 눈을 했다.

 

그래서, 나도 뱀파이어가 무서우니 하나 달라고 했지.”

 

벨져의 말에 릭이 참던 웃음을 기어이 터트렸다.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저 말을 읊었을 벨져의 모습이 머릿속에 선하게 그려졌다. 그 모습을 내가 봤어야 했는데. 몸을 앞뒤로 흔들며 웃음을 쏟아낸 릭이 통탄하다는 듯 말했다. 배를 잡고 실컷 웃던 릭은 천천히 웃음을 사그라트렸다. 벨져는 어느새 침대에 걸터앉아 릭과 마주보고 있었다. 릭의 손끝에 닿는 십자가는 모서리가 둥글고 매끈했다. 내가 손을 좀 봤어. 릭이 쥐고 있던 십자가를 가져간 벨져가 릭의 위로 올랐다. 릭의 배에 손을 얹고 허벅지에 엉덩이를 붙여 앉았다. 벨져는 손에 있던 십자가를 릭의 배 위에 올려두었다. 자유로워진 손을 꽉 잠긴 셔츠 처음으로 가져다댔다. 느긋한 움직임으로 단추를 하나씩 풀어가는 벨져에 릭은 깍지 낀 두 손을 목 뒤로 두었다. 힘없이 풀어지는 단추들이 지나간 자리로 보이는 벨져의 속살에 릭은 입꼬리를 올렸다. 마침내 모든 단추들이 풀리고 셔츠 외에 아무것도 걸치지 않은 벨져의 나신을 보며 침을 삼켰다. 벨져는 무릎으로 몸을 세우고 릭을 내려다보았다. 지배자의 오만함이 담긴 눈으로 릭은 보던 벨져는 제 가슴으로 손을 가져다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