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릭벨] 자장가
(BGM : 슈만 - 트로이메라이)
“벨져, 벌써 두시야.”
릭이 고개를 들어 탁자 위의 시계를 확인하고 말했다. 잠이 잔뜩 묻어있는 소리의 끝이 늘어졌다. 벨져를 안고 있던 팔은 이미 풀어진 채였다. 벨져가 이리저리 뒤척이는 탓에 릭은 잠들지 못하고 있었다. 잠이 들쯤이면 어김없이 이불이 얇게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릭의 잠을 깨웠다. 릭은 피곤한 눈을 비비고 눈썹 앞머리를 진하게 눌렀다. 그럼에도 눈에서는 아직 졸음이 가시지 않았다. 30분 전에는 같은 이유로 방을 옮기려는 벨져의 팔을 붙잡았다. 따로 자는 건 싫소. 릭의 완강한 태도에 벨져는 별 다른 말없이 다시 침대로 돌아와 누웠다. 그 후 30분은 전과 같았다.
벨져는 아무 말없이 한숨만 쉴 뿐이었다. 본인이 가장 답답할 테지. 그대, 무슨 걱정이라도 있소? 혹시 아픈 곳이 있는 건 아니고? 릭의 질문에 벨져는 연신 고개를 저었다. 그러고 또 숨을 내뱉었다. 릭은 몸을 일으켜 제가 아까 머리를 뉘였던 곳에 앉았다. 손을 뻗어 가까이에 있던 램프에 불을 붙이고 탁자 위에 두었다. 불이 은은하게 빛을 밝히고 따뜻한 색이 방안에 일렁였다. 릭은 침대 머리판에 몸을 기대고 팔짱을 꼈다. 릭을 향해 돌아 누운 벨져는 멍하니 눈을 뜨고 있을 뿐이었다.
“그대 어릴 적엔 어떻게 잤어?”
오늘같이 잠이 오지 않을 때 말이오. 릭은 살포시 눈을 감은 채 말을 이었다. 벨져는 그런 릭을 한 번 올라다보고 이불을 끌어 목까지 덮었다. 느리게 눈을 감았다 뜨고 입술을 움직였다.
“유모가 조용한 음악을 틀어줬다.”
“클래식 말이야? 녹턴이나 트로이메라이 같은?”
벨져는 릭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릭은 눈을 떠 벨져의 방 안을 둘러보았다. 레코드판은커녕 축음기도 찾아볼 수 없었다. 벨져는 음이 튀는 소리가 거슬린다고 말할 것이 뻔했다. 음악이 듣고 싶다면 직접 악사들을 부르면 되는 일이고 실제로 간간히 벨져는 그렇게 음악을 듣곤 했다. 릭은 곤란함에 머리를 긁적였다. 지금 이 시간에 악사들을 불러올 수도 없고. 릭은 이마를 짚고 한숨을 쉬었다.
“벨져, 웃지 않는다고 약속해주시오.”
릭은 크게 숨을 들이쉬고 다시 벨져의 옆에 누웠다. 벨져와 마주하던 릭의 눈이 아래를 향하며 고개를 살짝 숙이고 눈을 찡그렸다. 릭은 숨을 몇 번이나 들이쉬고 내쉬기를 반복하더니 저를 쳐다보고 있는 벨져의 눈을 감겼다. 그대 때문에 정말 별 짓을 다 하는군. 릭은 눈썹을 늘어뜨리고 짧게 웃었다. 두 번 헛기침을 하며 목을 풀었다. 침을 삼키는 소리 후에 입술이 떼어지는 소리까지 모든 것이 선명하게 들렸다.
얼마 지나지 않아 들려오는 릭의 낮은 허밍소리에 벨져는 릭이 아까 했던 말을 떠올리고는 웃지 않으려 입술을 깨물었다. 릭이 조용히 흥얼거리는 것은 슈만의 트로이메라이였다. 제가 아까 어릴 적에 들었다고 했던. 목소리가 잠겨 의도한 것보다 조금씩 느리게 밀려나오는 소리들이나 저를 토닥이는 손길이 어설프면서도 따뜻해 벨져는 릭 모르게 살풋 웃었다. 릭이 눈을 감고 있어 눈치 채지 못한 것이 다행이었다. 원곡보다 훨씬 낮은 곳에서 맴도는 소리가 듣기 좋았다. 벨져는 눈을 감고 릭의 토닥임에 맞춰 숨을 쉬었다. 계속해서 같은 곳만 도는 릭의 허밍에 벨져는 입꼬리를 올리고 그대로 잠이 들었다. 어릴 때의 꿈을 꾸는 것 같기도 했다.
p.s. 헥스님 생일선물♥
선물이라고 하기에도 민망하네요ㅠㅠㅜ
다음엔 더 좋은 걸로 드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