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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릭벨] IOU 3

* 글에 나오는 약은 실존하지 않아요 제가 입맛대로 지어낸 것입니다 : )



릭은 보통의 소시민이었다. 그는 평화로운 저의 나날들을 좋아했다. 일어나 출근 준비를 마치고 아파트 맞은편에 위치한 작은 빵집에서 베이글 샌드위치를 사먹고 그 옆에 있는 카페에서 카페라떼를 시켜 간단한 아침을 먹으며 출근한다. 도착한 회사에서는 업무에 치여 이리저리 허둥대다 5시가 되면 모두가 자리를 떠났다. LA와는 달리 야근도, 추가업무도 없는 저녁이 있는 삶, 얼마나 환상적인가? 오스트리아로의 장기출장은 제 생에 가장 잘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고 퇴근을 할 때마다 릭은 생각했다. 릭은 집 근처 분위기 있는 식당에서 나름 우아한 저녁을 차려먹고 집으로 와 저만을 위한 시간을 즐겼다. 언젠가 라디오에서 들었던 노래를 흥얼거리며 집에 들어서 샤워를 마치고 옷을 갈아입었다. 그리고는 서랍장 두 번째 칸 가장 아래에 묻혀있는 갈색병을 꺼내 깨끗한 종이에 손가락 한 마디 반 분량을 털어놓고 소파로 향했다. 양쪽 팔걸이에 머리와 발을 걸쳐두고 짧은 플라스틱 튜브로 가루를 들이쉬었다. 가루가 거의 사라질 때까지 몇 번에 나눠 들이키고는 찾아올 황홀함을 맞을 준비를 했다.

 

 

릭이 약을 시작한 건 1년 전, 미국 LA에서 일할 때였다. 간만에 업무가 없는 날이라 술이라도 한 잔 하면서 시간을 보낼까하는 생각에 펍으로 향했다. 지하에 위치해있는 펍은 느릿하고 끈적한 노래가 흘러나오고 은은한 분홍색 조명이 비치는 곳이었다. 그곳에서 릭은 제 대학동창, 브랜든을 마주쳤다. 화장실을 찾아 이리저리 찾아다니며 헤매다 다른 사람에게 무언가를 건네고 있는 그 장면을 봐버렸는데 사실 릭은 그것이 무엇을 뜻하는지 몰랐을 것이다. 당황해 얼어버린 동창과 그의 앞사람을 보지 못했다면. 눈을 굴려가며 저의 이름을 머릿속에서 찾는 브랜든을 뒤로 하고 릭은 다시 화장실을 찾으러 떠났다. 결국, 지나가는 사람을 붙잡아 무사히 화장실을 가고 나오는 그 길로 곧장 집으로 향했다. 집으로 가는 길에 도대체 주고받던 물건이 무엇일까 생각해보다 그 뒤로는 까맣게 잊어버렸다. 릭에게는 그다지 중요한 문제가 아니었기 때문에.

 

 

며칠 뒤에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왔다. 스팸인가 싶어 처음엔 무시하다 몇 번이고 울리는 전화는 받을 때까지  않을 것 같아 결국에 통화 버튼을 밀었다. 발신자는 펍에서 보았던 브랜든이었다. 떨리는 목소리로 할 얘기가 있다며 저녁에 잠시 만날 수 있겠냐고 물었다. 릭은 무료했고 도대체 그 잘났던 동창을 이리도 작아지게 만든 것이 무엇인지 확인해보고 싶었다. 시계 앞자리 수가 6으로 바뀌자마자 챙겨두었던 짐들을 들고 예의 그 펍으로 빠르게 이동했다. 계단을 내려가고 주위를 두리번대는 릭을 발견하고 바텐더가 룸으로 안내했다. 룸이 있는 펍이라니 특이하군. 그렇게 생각하며 릭은 방 안에서 브랜든을 만났다. 어떻게 지냈느니하는 서론은 온데간데없이 바로 본론부터 들어가 장황하게 얘기를 늘어놓았지만 요약하자면 부잣집 도련님께서 어둠의 경로에서 약에 손을 대기 시작했고 그것을 넘어서 직접 팔기까지 한다고. 꽤 수입이 괜찮고 더불어 다양한 약들도 접해볼 수 있어 괜찮은 취미라고 덧붙였다. 그래서 결론은? 제가 이런 짓을 하고 있다는 것을 못 본 척 해달라는 것이었다. 릭은 순간적으로 떠올렸다. 브랜든의 어머니가 LA의 하원의원이라는 사실을.

 

 

릭은 호기심이 일었다. 도대체 무슨 약이기에. 입가에 미소를 띠며 맨입으로는 그럴 수 없다고 말하자 눈치 빠른 브랜든이 작은 갈색병을 내밀었다. 고운 가루들이 엄지손가락만 한 병의 3분의 2 가량을 채우고 있었다. 약 이름은 LRE. 한 마디 반을 들이키면 기분 좋을 정도의 흥분감과 꿈같은 환영이 보이고 한 마디를 온전히 들이키게 되면 오르가즘보다 더한 황홀감과 실제 같은 환각을 느낄 수 있다고. 지속시간은 짧으면 15분에서 길면 30, 부작용은 중독과 중추 신경 손상이지만 그마저도 한 번에 손가락 두 마디쯤 들이키지 않는 이상은 잘 없다고 했다. 정말 잘 만들어진 약이고 유통채널이 몇 없어 귀한 만큼 가격이 꽤 나간다고 브랜든은 신이 나서 덧붙였다. 약의 역사까지 읊으려드는 브랜든의 말을 끊고 일단 알겠다며 릭은 펍에서 나와 저의 집으로 향했다.

 

 

도어락을 누르면서도 왼손으로는 넥타이를 잡아끌고 단추를 풀었다. 릭은 마음이 급해 자꾸 번호를 누르는 손가락이 헛돌았다. 조급한 마음에 다리를 떨었다. 그는 궁금증을 참지 못하는 남자였다. 번호를 다 맞추자 도어락이 경쾌한 소리를 내며 문을 열렸다. 집으로 들어서자마자 얼른 옷을 갈아입고 브랜든이 알려준 대로 종이에 가루를 덜었다. 기왕 약을 하는 김에 한 마디를 한 번에 털어 넣고 투명한 플라스틱튜브로 들이켰다. 한꺼번에 숨을 들이쉬는 순간 급격하게 찾아오는 고통에 릭은 반사적으로 기침을 토했다. 눈꼬리에 눈물이 맺힐 때까지 가슴을 치며 가루를 거의 게워내다시피한 릭은 도대체 이게 뭐가 좋다고들 난리인지 이해가 가지 않았으나 곧 몸의 변화가 찾아왔다.

 

 

심장이 빨리 뛰고 몸이 데워지며 야릇한 감각이 발끝부터 올라왔다. 섹스할 때의 그 느낌보다 더 한 어떤 감각이었다. 피부를 타고 터지는 감각들에 릭은 목에서 긁는 소리를 냈다. 퍼지는 열기에 숨이 가빠지고 온몸으로 퍼진 감각에 손발이 후들거렸다. 무엇이라도 잡으려고 마룻바닥을 긁고 기어가다 누군가 저를 만지는 느낌에 뒤를 돌았다. 옷을 입지 않은 채로 제 다리를 훑고 팽배한 릭의 것을 만지는 그녀는 며칠 전 회사 휴게실에서 모았던 잡지의 커버를 장식한 모델이었다. 옅은 갈색빛 머리카락을 귀에 꽂으며 살짝 웃고는 릭의 중심에 제 입을 가져다댔다. 왜 그녀가 이곳에 있는지는 중요하지 않았고 릭은 그 순간을 마음껏 즐겼다. 대체 몇 번이나 절정에 이른 것인지 그 횟수가 한 손을 넘어갔다. 릭은 여태껏 제가 했던 어떠한 섹스보다 황홀했고 그것은 섹스라고 부르기에도 미안할 만큼 엄청난 무엇이었다고 단언할 수 있었다. 목 저편에서부터 흘러나오는 신음을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고 머리부터 발끝까지 폭죽들이 터지지 않는 곳이 없었다. 마침내 모든 것이 끝나고 숨을 가다듬던 릭은 몸의 열기가 천천히 사라지는 느낌과 함께 현실로 돌아옴을 느꼈다. 몸에 닿던 손길들이 아직 선명한데 그녀는 어디에도 없었다. 그제야 브랜든이 했던 말이 생각났다. 현실 같은 환각. 릭은 새어나오는 웃음을 그대로 내보냈다. 목이 젖혀질 정도로 웃어젖히던 릭은 이것이 제 심심한 일상에 일탈이 되어줄 것이라 확신했다. 이제 릭은 조금 더 행복한 소시민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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