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는 소문대로 마피아였다. 그것까지는 예상하던 바였으나, 그가 소유하고 있는 조직은 생각할 수 없을 만큼 거대했다. 마약거래, 대부업, 성매매 등 검은 돈이 도는 곳이라면 어디든 손을 뻗고 그로 인한 상부의 권력까지 쥐락펴락했다. 그의 인정은 돈과 값진 것들 한정이었다. 한 단어로 요약하자면 쓰레기 같은 남자였다. 벨져는 그가 왜 한낱 고아일 뿐인 저에게 관심을 가졌는지 항상 의문이었으나 세계에서 몇 없다는 귀중한 보석을 손에 쥐었을 때 비로소 알게 되었다. 부드러운 천으로 몇 번이고 보석을 쓰다듬으며 광을 내던 눈이 처음 마주쳤을 때의 그것과 같았다. 남자에게 벨져는 그저 ‘살아있는’ 보석일 뿐이었다.
남자는 호화스러운 방과 화려한 옷, 산해진미들로 벨져를 배불렸다. 특별히 무언가를 요구하지도 않고 그저 베풀 뿐이었다. 벨져는 저를 향한 눈빛이 징그러운 것만 뺀다면 이렇게 지내는 것도 나쁘지 않다 생각했다. 사실 썩 괜찮았다. 이 생활이 1년간 지속되자 벨져는 이 남자가 단순히 움직이는 보석으로 인형놀이를 하고 싶었던 것이리라 짐작했다.
어느 날, 남자는 본인의 방으로 벨져를 불렀다. 이런 일은 처음이었으나 별다른 의심은 품지 않았고 남자의 방문을 여는 순간 그의 조직원들에게 팔을 붙잡혔다. 십자 모양의 판에 내팽개쳐져 몸을 움직일 수 없도록 결박되었다. 그것은 아주 순식간이었다. 그나마 자유로운 목을 움직여 남자를 바라보았다. 의문을 품은 벨져의 눈을 똑바로 직시하며 남자가 웃었다. 갑작스러운 상황에 떨리는 목소리로 무슨 짓이냐 물었더니 제 것을 아름답게 꾸미는 것이라 말하고는 벨져의 얼굴을 쓰다듬었다. 남자의 물밑 작업에는 벨져 또한 포함이었다.
벨져의 등에는 그림이 새겨졌다. 넝쿨을 타고 올라가는 파란 장미가. 여린 살을 바늘로 몇 천 번이고 찔러대는 아픔에 벨져는 어떤 소리도 없이 입술을 깨물고 핏발 선 눈으로 남자를 노려보기만 했다. 꽉 쥐어진 주먹으로 손톱이 파고들어 붉은 피가 살을 타고 흘렀다. 독한 놈이라 더 마음에 든다며 몸을 젖히도록 웃는 저 작자에게 속아 넘어간 본인이 한심하고 어처구니가 없었다. 남자는 그 후에 본인의 진짜 모습을 감추는 일이 없었다. 그는 벨져의 육신을 제멋대로 탐하고 취했다. 조직에서도 소문이 파다했다. 두목이 데리고 노는 새파랗게 어린 남창. 조직원들이 인식하는 벨져는 그런 존재였다. 한 번씩 마주칠 때면 엉덩이나 중심을 스치고 자신에게도 한 번 대달라며 질 낮은 말들을 던지는 것은 기본이었다. 쓰레기 같은 현실에서 그나마 다행이었던 것은 남자가 자신의 것은 죽어도 남에게 내어주지 않는다는 것이었고 남자에게서 한 가지 인생의 교훈을 얻을 수 있었다는 것이었다. 원하는 것을 얻는 사냥에는 많은 기다림과 인내가 필요하다는 것. 벨져는 제 ‘양아버지’에게서 배운 대로 고분고분하게 5년을 기다리며 완벽한 신임을 얻었고 그 눈 뒤에서 제 힘을 키웠다.
엄마가 저를 떠난 그 겨울날이 벌써 14번째로 찾아오던 그날, 벨져의 생일을 맞이하던 파티에서 벨져는 4층에 위치한 제 방 베란다로 남자를 불러냈다. 그는 웬일이냐며 벨져의 푸른 정장자켓 아래에 살짝 가린 엉덩이를 쓰다듬고 웃었다. 벨져는 키스를 빙자해 독한 술을 먹였고 어지러워 비틀거리는 남자를 그대로 그곳에서 밀어버렸다.
남자의 장례식이 성대하게 치러졌다. 그의 죽음에 대한 이야기도 나왔다. 그 ‘보스’가 추락사라니 믿을 수 없다는 여론이 대다수였다. 벨져는 '양자'로서 모든 것을 상속받았다. 그의 조직, 돈, 권력, 사람들 이제는 모두 벨져의 것이었다. 그가 조직의 보스가 되어 가장 먼저 한 일은 조직 내 기강을 바로 잡고자하는 숙청이었다. '아버지'의 죽음을 욕보이는 자들을 모아 산 채로 들개에게 던졌고 조금의 반항이라도 표하는 이들에게는 깔끔한 한 발의 총알을 선사했다. 아주 우연히도 그들은 벨져에게 모욕적인 처사를 안긴 이들이었다. 벨져는 두 가지의 경고를 보냈다. 더 이상 남자의 죽음에 대해 알려하지 말 것. 저를 모욕한 죄에 응당하는 처벌은 오직 죽음 뿐이라는 것.
벨져는 더러운 왕좌에 올랐다. 그에 반문을 제기하는 이들은 없었다. 모두가 제 목숨이 귀했으며 그들은 강한 자에 이끌리는 족속들이었다.
벨져에게 문신은 절대 달갑지 않은 과거였고 언제나 지우고 싶은 것이었다. 옷을 갖춰 입어도 존재를 여실히 드러내는 탓에 목까지 이어져있는 문신을 가리려 머리카락을 길렀다. 머리카락은 아주 더디게 자랐고 그것이 문신을 다 가리고 그보다 더 길어져 끝이 날개뼈에 닿았을 때, 벨져는 '그'를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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