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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벨] 겨울아이

홀든가로 스토커 au 다무 ←이글, 이글 →벨져




안녕, 벨져.”

 

긴 머리를 낮게 묶인 남자가 벨져에게 손을 흔들었다. 입꼬리는 살짝 올라가 있었고 눈에는 묘한 흥분이 담겨있었다. 벨져, 인사드리렴. 삼촌이란다. 그를 소개하는 말이 끝나자마자 벨져는 등을 돌려 자신의 방으로 향했다. 등 뒤에서는 저를 대신해 사과하는 소리가 이어졌지만 괘념치 않았다.

 

그를 마주한 곳을 지나, 나무 바닥과 제 신발이 부딪혀 만드는 구두소리에 집중하다보니 어느새 문 앞이었다. 문을 여니 박제된 새들의 눈동자가 빛을 받아 반짝이고 있었다. 곧 닫힌 문으로 모든 조명이 사라지고 이제 막 구름에서 나온 달이 방을 넌지시 비추었다.

 

1층의 열린 창문을 타고 시끄러운 소리들이 웅웅거렸다. 째깍거리는 시계소리에 맞춰 맥박이 뛰었다. 오늘은 제 18번째 생일날이었다. 제가 성인이 된 것을 축하하는 작은 파티가 열렸고 아버지가 창고에 오래 아끼고 있던 와인을 생전 처음 입에 대던 순간이었다.

 

벨져는 아까 그 순간을 머릿속으로 되뇌었다. 자신에게 손을 흔들던 남자. 삼촌이라고 하던. 저와 닮아 보이는 곱상한 얼굴과 반대되는 눈을 스친 흉터가 잘 어울렸다. 벨져는 저를 향한 이글의 눈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분명 한 번도 본 적 없는 삼촌은 저를 보는 눈빛이 익숙했다. 그 속에는 미묘한 기대도 있었다. 알 수 없는 거부감이 들었다.

 

-

벨져는 구부러진 계단난간을 잡고 졸음이 묻은 눈을 비비며 부엌으로 향했다. 밤사이 눈이 내려 땅이 하얗게 덮이고 있었다. 우는 새들도 발이 차가워 오래 앉아있지 않고 얼른 날아가 버렸다.

 

계단에서 내려 부엌으로 가까워질수록 부딪히는 식기 소리가 선명했다. 이미 벨져의 아버지, 다이무스가 식사를 하고 있었다. 식탁 위에는 아무런 말도 없이 그저 달그락거리는 소리만 오갈 뿐이었다. 그 맞은편에는 이글도 함께였다.

 

……,”

벨져, 식사하거라.”

 

벨져를 발견하고 무표정하던 얼굴이 반색하며 그를 부르던 이글의 말을 다이무스가 냉큼 잘랐다. 답지 않게 제 옆자리를 두드리며 이리오라는 제스쳐를 취하는 다이무스에 조금 어색하게 걸음을 옮겼다. 언제부터 이렇게 다정한 아버지였다고. 고요한 사이에 의자를 끄는 소음이 크게 들렸다 이내 고용인이 식기를 꺼내는 소리로 바뀌었다.

 

벨져가 식사를 시작하고 난 후에도 정적은 계속되었다. 평소에도 조용한 시간이었지만 지금과는 달랐다. 저에게서 눈을 떼지 않고 손을 움직이는 이글과 과하다 싶을 정도로 느릿하게 수저질을 하는 다이무스가 어색한 정적을 만들어냈다. 식탁을 사이에 두고 신경전을 벌이는 둘에 벨져는 체할 것 같아 아직 반이나 남은 접시를 내버려두고 냅킨으로 입을 닦았다.

 

짧게 인사를 하고 일어나는 중에도 긴장은 사라지지 않았다. 무슨 관계인걸까, 두 사람. 제가 18살이 되어서야 처음 존재를 알게 된 아버지의 남동생. 단순히 사이가 나쁘다라는 문장으로 정의되는 관계는 아님을 느꼈다. 2층으로 향하는 층계에서 다이무스의 낮은 음성이 크게 들렸다. 되돌아오는 소리가 작은 것으로 보아 다이무스 혼자 열을 내는 모양이었다. 벨져는 침대에 누워 팔다리를 작게 휘저었다. 그리고 눈을 감았다. 잠에 들기 전 마지막으로 떠오르던 것은 다이무스의 방에서 보았던 어린 시절의 사진이었다. 한쪽 모퉁이가 찢겨져 나가 불온전한, 유심히 살펴보던 것에 처음으로 화를 내던 아버지의 모습. 그것을 떠올리며 벨져는 잠이 들었다.

 

-

 

절대 1층으로 내려와서는 안 된다. 필요한 것이 있으면 고용인을 부르도록 하고. 불안해하던 다이무스는 몇 번이고 벨져에게 되뇌었다. 어젯밤, 회사로부터의 연락을 받은 다이무스는 곤란한 표정을 짓고 부정의 말을 건네다 이내 한숨을 쉬고는 전화를 마쳤다. 그 후로부터 지금까지 벨져에게 반복하는 말이었다. 벨져는 이제는 저 말이 주문처럼 느껴졌다.

 

알겠으니 얼른 다녀오세요.”

 

다이무스는 벨져의 대답에도 안정이 되지 않는지 어두운 낯빛을 계속 하다 벨져를 끌어안았다. 방문을 나가고 현관문을 열 때에도 밝은 기색이라고는 전혀 없었다. 벨져는 제 방 창문으로 다이무스를 지켜보았다. 몇 번이고 제 방과 1층을 돌아보며 괴로워하는 모습이 낯설었다. 어머니의 죽음 앞에서도 보이지 않았던 모습에 벨져는 그때를 생각했다. 5년 전에 제 어머니가 세상을 떠나던 그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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